챙김이 2024. 7. 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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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내려놓음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살아오며 많은 조건들을 충족 시키길 원하며 지내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 부분 원했던 조건은 이미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순간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을까요?

 

 

어떤 이는 충분히 먹지도, 충분히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충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반면 어떤 이는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행복을 느낍니다. 이처럼 즐거움, 행복에는 개인마다 한도가 다릅니다. 충분함을 아는 이는 한도를 감지 하기도,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현자는 적은 것에 만족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소박한 삶, 검소한 생활방식을 권면했습니다. 의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당연한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소박한 삶은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삶입니다. 궁핍함이나 따분함과는 다릅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검소함은 만족에 이르는 것이 어렵지 않으며, 그러기에 행복과도 가깝습니다. 마음에 여백이 있기에 아름답고 맑은 삶으로 이끌어 줍니다. 

현대 사회는 산업화로 인해 인류 사상 최고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볼 것, 배울 것, 경험할 것이 넘쳐 납니다. 새로운 것, 채우는 것이 주는 시간은 점차 짧아집니다. 더 이상 우리는 채움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충분하지 않다’,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느끼며 끊임없이 몰려오는 허기fake hunger)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안젤름 그린 신부님은 현대인의 심적 허기의 원인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충분한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고 둘째는, 타인과의 비교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로 언급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어린시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한 자신이었다고 지각하고 있는 경우 그 느낌은 평생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늘 혹독하게 열심히 살라고 지적하며 자신을 채찍질 하며 살아가게 되곤 합니다. 그런 자신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내면 아이는 꼭 안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를 꼭 안아주고 ‘넌 충분히 훌륭한 존재야. 난 네가 무척 만족스럽고, 있는 그대로 네 모습이 가장 좋단다.’라고 매일 말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마음속 자책과 불만은 서서히 줄어들고 일상을 만족하는 자신으로 변할 것입니다. 

둘째로 언급한 것은 타인과의 비교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충분하다는 느낌을 영원히 느낄 수 없게 합니다. 늘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자신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 멋지고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만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이를 뛰어넘을 방법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비교는 행복의 끝이자 불만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비교하는 한 우리는 늘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것,

나의 신체와 정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온 세상은 나의 것이 됩니다.

나는 세상과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과 하나가 되면,

세상은 나의 것이 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산업화, 물질 중심의 사회의 문제, 병적 허기, 존재의 상실과 이분화에 대한 예견과 해결책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예술 문화 사조인 미니멀리즘(minimalism, 최소주의(最小主義), 1960-70)은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술, 음악적 표현으로 시작해 문학, 라이프스타일(minimal life)까지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물건을 적게 소유하면서 생활이 단순해지고,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오히려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小確幸)’(A Small, Good Thing)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집‘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은 물질사회, 사회적 인습과 인연을 끊고 숲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간소한 삶을 살아감이 주는 풍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조용한 삶을 갈망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단순한 삶, 본능적 욕구만 충족할 수 있는 경제적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인생,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계획하고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진정으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지향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만나고 싶은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느끼고 정리하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법정스님도 동일한 관점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감사의 마음과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으로 인한 물질의 노예가 되기 보다 나눔을 실천하고 나눈다는 것이 준다는 것이 아닌, 되돌려 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며, 서로 손잡을 줄 아는 심성을 회복하여 부족한 이들을 살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일상에서 실천할 때가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삿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소로나 법정스님과 같이 자연을 벗하며 숲으로 들어가 살 수 없습니다. 매일 뉴스나 미디어를 접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스스로 원치 않아도 성과를 평가받고, 동료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학생들의 경우 성적에 대한 비교,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며,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은 스스로의 삶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조절해 나가며 살아가는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행복을 가로막는 것 중 하나는 우리 뇌가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의 설레임을 배우자가 된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지, 처음 출근했을때의 느낌이 지속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심지어 자녀가 출생했을 당시의 경이로움을 잊고 자녀와 심각하게 갈등 하거나  귀찮다고 짜증을 내는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익숙해지면 더 이상 호기심을 갖지 않으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반가워 하지 않게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잠시 일시적 거리두기, 내려 놓음은 시간이 지나도 대상과의 긍정적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고, 손상된 관계(대인관계, 일, 학업 등 모든 나와 다른 것들과의 관계)는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 더 즐기고, 느끼고, 음미하게 되고,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음미하는 능력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