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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분노: 분노를 통한 해방의 길 - 라마 로드 오웬스

마음챙김 이야기/마음챙김 철학

by 챙김이 2024. 1. 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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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간에 저는 분노와 신체 그리고 정체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라마로드오웬의 러브 앤 레이지의 한 부분입니다.

 

 

나는 육체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이 억압을 유지하는 주요 전략임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나 예민해 외부 자극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 경우 자신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감각을 무디게 하기도 한다.

신체 경험에서 분리되도록 조건을 지정하면 그는 신체 감각의 생성으로 주변 조건에 반응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둔감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는 감정의 둔감화로 이어질 수 있다.

 

신체 감각이 없으면, 감정이 둔감화 되면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확인되지 않은 감정에 따라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처음에 나의 분노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구체화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분노를 이겨낸 것처럼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저는 분노가 많은 흑인으로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했고 모두의 친절한 친구인양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가면을 쓴 것 같은 연기 같은 삶이었다.

 

"가리고 숨기려 해도 저는 흑인입니다."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저 역시 다양하고 복잡한 정체성 놀이를 갖고 있다. 정체성이란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만드는 나만의 이야기라고 이해한다. 내게 가장 크게 형성된 정체성은 흑인, 시스 젠더, 퀴어 혼열, 비만이다. 미국의 흑인으로서 저는 분노를 건설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없다. 사실 저는 저의 분노가 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의 분노는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이다. 나의 분노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감정이 감각을 통해 몸에서 생겨나고 내가 이에 민감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 분노가 제 안에 있다는 것도, 내게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고 결국 그 감정과 관계 맺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챙김을 수행하며 저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시스젠더(cisgender, non-transgender)의 남성으로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오며 쌓인 제 안에 인식되지 않은 분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몸과 감각기관이 없었다면, 연결되지 않았다면 저는 저의 분노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저는 타인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을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은 지배적이야야 하며 무엇이든 주장할 권리가 있고 공간을 차지할 권리도 있으며, 관심의 중심이 될 권리, 본질적으로 평범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반면에 우리 몸과 그 감각이 느끼는 것,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허용되지 않았고 아무도 가르쳐 준 바가 없다. 가부장적 조건화에서는 우리 몸과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적이거나 약한 것으로 치부되고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어왔다.

 

그러나

자신이 느끼는 고유의 경험에 대해 자유롭게 표현하고 듣는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더 정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앞서 말한 너무나 당연시 되어온 권리가 침해된다고 느낄 때 분노를 경험했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침해당했다고 부당한 경험을 했다고 느낄 테니 그 분노는 스스로 정당화 된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 감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 누구일까? 실제로 진정으로 분노할 만한 일이었을까요? 그보다는 느낀 것을 말할 수 없고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잡고 있던 것이 더 분노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저의 분노는 권력과도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부르는 감각과 경험의 집합인 자아는 지배와 복종에 관한 것이다. 에고가 자신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법의 일부는 주변을 통제하는 것이고 이는 지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신이 안전하기 위해 사물을 통제하고 정복해야 한다. 불안정성, 변동성, 불확실함, 간접적인 우회적인 표현은 자아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인 학습된 에고, 자신에게 정의하고자 한 정체감, 만들어진 정체감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을 통제하고자 하기도 하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늘은 몸의 억압과 분노, 그 분노의 원인인 내가 믿고 있는 것, 사회에서 환경에서 주입된 학습된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온, 그리고 그게 지켜지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고 나라는 존재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기도 하는 그래서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몸을 통해 인식되는 감정, 부당함, 억울함, 분노… 피해의식이 될 수도 있고요… 그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내게 찾아온다면 잠시 멈추고 잘 들여다보고 어떤 에고가 먹이를 원했던지, 그 정체감이 왜 내게 중요했는지 돌아보고 흘려보내고 다시 세워보는 시간 가져보실 것을 권합니다.

 

모두가 접촉하고 알아차리며 자신과 타인, 세상과 연결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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