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이 사는 삶, 그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인가를 집착하는 마음을 비워낼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그렇게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편안한 상태를 ‘니르바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해탈을 의미합니다. 니르바나는 조건지어진 무엇을 비움으로써 찾아오는 평안함이라는 의미가 있기에 행복과 평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니르바나는 언어로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자유로움, 평안함, 깨어남 등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가벼워지는 복합적인 경험입니다.
그러기에 집착과 갈애의 완전한 종식의 결과라고 정의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충분히 설명되는 부분입니다.
모든 인간의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이 내적인 갈등과 불균형에서 온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에게 증명되었고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불교철학에서 말하는 니르바나, 집착에서 벗어난 해방된 상태는 종착지가 어디인지 불분명하고 형이상학적이기 때문에 과학적이지 않다!, 특별한 사람만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해왔으나 최근에는 신경심리학자 릭 핸슨(Rick Hanson), 세계적인 의학박사이자 트라우마 권위자인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 등 여러 저명한 인사들도 명상의 치유적 효과에 대한 중요성과 불교 철학의 치유적 힘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수행하며 점차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되고 숨어있던 집착, 갈망하던 것과 만나며 그 저항하던 것을 비워내고 본질에 대한 추구로 방향을 바꿔나갈 때, 저항이 사라진 몸과 마음이 주는 에너지를 직접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이것은 집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좋은 것, 옳은 것, 선한 것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도 집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이분화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집착, 갈애라고 하면 욕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고 그러기에 욕심을 비우는 것을 떠올릴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성실해야만 한다, 게으른 것은 나쁜 것이다, 조급한 것은 나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거기에도 집착과 갈애가 붙을 수 있습니다.
게으르지 않으려고 집착하고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쉬엄쉬엄 해야만 한다는 것, 나는 쉬어야만 한다는 것에 집착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에 집착하기에 고통스러워 했는지, 불편한 감정을 느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욕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집착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가정에 집착하고 화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하면서 고요함, 즐거움, 혹은 특정 경험에 집착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자신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덜 집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복에도, 슬픔에도, 성취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흐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러한 행위를 하며 존재하는 삶의 경험에, 그 흐름에, 나아가 삶의 경험과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에 몰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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